
책장을 덮고 나서도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평소 책을 잘 읽지 않던 제가 단숨에 읽어 내려갔던 '죽은 시인의 사회'는 그만큼 강렬했습니다. 몇 년 뒤 영화로 다시 만났을 때, 책에서 느꼈던 그 전율이 스크린 위에서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걸 보며 또 한 번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교육 현장에서 회자되는 이유는, 우리가 여전히 같은 문제 앞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 본질을 묻다 - 웰튼 아카데미의 획일화된 시스템
미국의 명문 사립학교 웰튼 아카데미는 엄숙한 분위기와 철저한 규율로 유명한 곳입니다. 학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오직 좋은 대학 진학이라는 목표만을 위해 짜인 커리큘럼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곳에서 교육의 목적은 학생 개인의 재능을 발견하고 키우는 게 아니라, 명문대 합격자 수라는 실적을 쌓아 학부모들에게 어필하고 더 많은 신입생을 유치하는 데 맞춰져 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거 완전 우리나라 이야기잖아'였습니다. 저 역시 무조건 대학을 가야 하고, 성공하려면 공부를 잘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 속에서 자랐으니까요. 웰튼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받는 교육은 대한민국의 입시 교육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습니다. 획일화된 평가 기준(standardized evaluation)이란 모든 학생을 같은 잣대로 재단하는 시스템을 뜻하는데, 쉽게 말해 개인의 특성은 무시하고 오직 점수와 등수로만 학생을 판단하는 방식입니다.
실제로 OECD 교육 지표에 따르면(출처: OECD) 한국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는 높지만 학습 만족도와 행복도는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는 웰튼 아카데미가 보여주는 교육 시스템의 문제점이 결코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합니다. 교육이 장사가 되고, 선생님이 장사꾼처럼 실적에 매달리는 순간, 학생 개개인의 목소리는 묻히고 맙니다.
카르페 디엠 - 키팅 선생님이 던진 혁명적 질문
새로 부임한 영문학 담당 키팅 선생님은 첫 수업부터 학생들에게 충격을 안겨줍니다. 교실 밖으로 학생들을 데리고 나가 졸업생들의 사진 앞에 세운 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즉 '현재를 즐겨라'는 말을 던집니다. 이 한마디는 지금까지 선생들의 입에서 나왔던 그 어떤 말과도 달랐고, 학생들의 마음에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키팅 선생님의 수업 방식은 파격 그 자체였습니다. 교과서에 실린 '시를 이해하는 공식'을 과감히 찢어 버리라고 지시하고, 책상 위에 올라가 세상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라고 가르칩니다. 그가 전하고자 한 건 명확했습니다. 획일화된 규율이 아니라 너희 자신, 그 영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었죠.
저는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학생들과 생각이 다르지 않았던 저 역시 선생님이 교과서를 찢으라고 하는 걸 보며 '이게 가능한 일인가' 싶었거든요. 하지만 동시에 속이 뻥 뚫리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란 주어진 정보를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질문하는 능력을 말하는데, 키팅 선생님은 바로 이 능력을 학생들에게 심어주고 있었습니다.
영화에서 학생들은 금요일 밤마다 몰래 숲속 동굴에 모여 '죽은 시인의 사회'를 부활시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억눌렀던 감수성을 토해내고, 시를 낭송하며, 자신의 내면과 마주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내성적이던 토드가 변화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키팅 선생님은 토드를 교실 앞으로 불러내 즉석에서 시를 짓도록 유도하는데, 이 장면에서 토드는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야성을 드러냅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며 교육이란 결국 학생 안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를 깨우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 획일적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 개개인의 목소리를 듣는 것
- 정해진 답이 아닌 스스로 질문하고 탐구하도록 이끄는 것
- 실적이 아닌 학생의 내면적 성장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것
이 세 가지가 키팅 선생님이 보여준 교육의 본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교육은 현실에서 환영받지 못합니다.
학생 주체성과 비극적 결말 - 시스템이 개인을 짓밟을 때
닐은 연극에 대한 열정을 발견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의사가 되길 원합니다. 아버지에게 연극은 시간 낭비일 뿐이었죠. 닐은 몰래 연극 오디션에 참가하고, 무대 위에서 자신의 재능을 활짝 꽃피웁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지켜본 아버지는 아들의 꿈을 잔인하게 부정합니다. 그날 밤 닐은 아버지의 서재에서 짧은 생을 마감합니다.
학생 주체성(student agency)이란 학생이 자신의 학습과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고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부모나 선생님이 정해준 길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살아갈지 선택하는 힘입니다. 닐은 바로 이 주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었지만, 시스템은 그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닐의 죽음 이후, 학교와 부모들은 책임자를 찾습니다. 놀랍게도 그 화살은 키팅 선생님을 향합니다. 교장은 '죽은 시인의 사회' 회원들을 일일이 불러 키팅 선생님이 닐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자술서에 서명하도록 강요합니다. 제가 이 장면을 보며 가장 화가 났던 건, 정작 닐을 억압해 온 아버지와 학교 시스템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오히려 학생들에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친 선생님이 희생양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죠.
키팅 선생님이 학교를 떠나는 날, 가장 내성적이던 토드가 먼저 책상 위에 올라갑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오, 캡틴! 마이 캡틴!" 한 명씩 학생들이 책상 위에 올라가며 키팅 선생님에게 경의를 표하는 이 장면은, 30년이 지난 지금 봐도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며 교육이 남기는 진짜 흔적은 성적표가 아니라 학생의 마음속에 심어진 용기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정리하면, 죽은 시인의 사회는 교육이 실적과 효율이 아닌 학생 개개인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카르페 디엠이라는 한마디는 제게도 잊을 수 없는 말이 되었고, 지금도 무언가를 결정할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립니다. 영화는 30년 전 작품이지만, 여전히 우리 교육 현장은 웰튼 아카데미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적어도 우리가 어떤 교육을 지향해야 하는지 방향만큼은 분명히 알게 됩니다. 획일적이고 일방통행적인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행복하기 위한 가치 있는 교육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명작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R8LkQqRyRh0